우주를 떠도는 말들

우주를 떠도는 말들

예전 글들을 정리하다가, 몇년 전엔가 내가 쓴 "사랑하지 않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는 구절을 발견했다. 여전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하지 않는 것 역시 죄는 아니다. 그리고 이제와 덧붙이자면, 마음이 변하는 것 역시 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니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짝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히 견뎌내기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 잘못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것이 사랑받지 못하는 쪽의 (많은 사람들이 잘못 짚는 부분이다) 잘못인 것 역시 결코 아니다. 편향된 매혹이란 결국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나 자기 의지로 그런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듯 죄인은 없는데도 세상은 상처받은 마음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 상처들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한 것이 아니고, 당신 역시 나를 굳이 사랑하고 싶지 않아서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까닭을 물을수도,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기에 이 상처들은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서조차 버려진다. 짙거나 옅은 수증기처럼 세상을 미미하게 떠돈다.

하지만 꼭 편향된 매혹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마음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변할 때 우리는 당황한다. 우리는 어떤 것들에 관해서는 오래오래 변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변한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그런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흔히 변해버린 상대방을 마주하는, '아직' 변하지 않은 사람이 관계의 피해자로 그려지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변해버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 역시 변해버린 상대방을 보는 것 만큼 쓸쓸한 일일 수 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나의 변화 앞에서 나는 더 그럴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하다. 그래서 너와 나는 헤어진다.

그리하여 다만 궁금한 것은, 함께했던 시간들과 함께 나누었던 말들의 행방이다. 우주에서 홀로 창백하게 빛나는 지구처럼, 한 때 분명히 존재했으나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우리들의 말과 시간은 넓은 우주 속에서 파르라니 떠돈다. 마음에 의해 이뤄지는 일엔 죄인이 없기에 이 시간들과 말들에겐 주인이 없다. 별이 왜 아름다운지 생각해 볼 일이다.

091207

 

by 낙타 | 2007/10/22 16:53 | 습작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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